작품 >Jumping Rope - Orna Portugali, Daphna Talithman and Sharon Younger / 2004
"Jumping Rope" is an interactive installation. A collaborative work between: Orna Portugali, Daphna Talithman and Sharon Younger. A virtual interactive rope jumping game. The figures turning the rope are projected on to two parallel screens. The praticipants are invited to enter the game zone located between the screens and jump. The success of the participants is checked using a camera. When jumping is synchronized to the rope the projected figures keep turning the rope and encourage the participants. But when a participant "steps" on the virtual rope the projected figures respond to his/hers failure. The participants, by jumping enable the plot to develop and the scene to unfold. from http://www.artic.edu/~syoung1/
<줄넘기>는 인터렉티브설치 작품으로 세 명의 공동작업을 통해 제작되었다. 양쪽 벽에는 줄을 돌리는 사람의 형상이 투사되어 있고, 관객은두 개의 화면사이 이미지 공간으로 초대된다. 관객이 게임 공간에 들어서면 관객의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서 기록된다. 화면 사이의 공간에는 가상의 줄이 있다고 여겨지고, 그 사이에서 마치 실제로 줄이 있는 것처럼 관객은 줄넘기를 한다. 관객이 가상의 줄을 밟게되면 가상의 줄을 넘던 형상도 줄넘기에 실패하게 되고 게임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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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양쪽의 대형 스크린 사이 바닥에 자세히 보면 두개의 선이 바닥에 그려져있다. 그 선 안에 사람이 서게 되면, 화면에 여자가 대략 줄 넘기한다는 말을 하고는 줄을 돌리기 시작한다. 줄이 땅에 올때 쯤 사람이 뛰지 않으면 걸렸다고 여자가 말을 한다.그러다가 사람이 밖으로 나가버리면 어디가냐는 둥 뭐 그런 말을 한다..
첫번째 사진을 보면 스크린 바로 아래쪽 정중앙에 까만 원이 보인다 이 부분이 센서(카메라)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세번째 사진에서 보이는 맞은편 스크린 아래쪽에는 길다랗게 형광등이보인다. 센서에서 형광등을 인식하여 빛이 보여지고 가려지는 여부에 따라 영상이 반응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형광등의 길이 만큼의 영역 안에 설 수 있도록 스크린 사이 바닥에 가이드라인을 그려 놓은게 아닐까.
전시회 >Digital Playground - Uijeongbu International Digital Art Festival 2005
Date : October 21 - November 4, 2005
Venue : Uijeongbu Arts Center
Concept : "Let's play with media art works!!"
Theexhibition"digitalplayground"present interactive mediainstallations,web basedworks whicharerevolving around new kind ofexperience anddigitalcreativity, newway ofmedia art presentation.
A swarm of butterflies circles as if looking for something. When your shadow enters nothing appears to happen at first; eventually, if you remain very still, you gain their trust and they begin to land on your hand or shoulder to rest. If you make a sudden movement they will scatter as even the slightest twitch sends them into a panic. This piece was featured as a Christmas fantasy gift in the 2003 Neiman Marcus catalog. from http://www.mine-control.com
화면 위에 어지럽게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관객의 그림자가 화면에 비추어지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마치 관객의 그림자와 친해지기라도 한 듯 그림자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다시 관객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나비들은 화들짝 놀라 사방으로 흩어진다. 가상의 나비, 그리고 나의 그림자와의 상호작용. 영상으로의 나비와 내가 하나로 교감을 이루는 듯한 느낌. 자연이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듯하다.
주 > 마인드컨트롤을 설립한 잭 부스 심슨의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SIGGRAPH 2002에도 전시된 바 있는 작품이다. 스크린에는 나비가 날아다니고 관객이 프로젝터와 스크린 사이로 들어가게되면 그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를 인식하여 나비가 그림자 위로 앉는다. 그림자가 움직이면 나비도 날아간다.
반투명 스크린을 위에 투사하고, 스크린 뒤쪽으로 카메라를 놓아서 그림자를 인식하게 할 줄 알았으나,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본 바,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스크린 왼쪽 천장에 카메라가 사람들을 향해 달려있어 카메라로 사람을 촬영하도록 되어있다. 카메라좌표계에서 사람의 위치를 스크린좌표계의 그림자의 위치로 계산할때 오류가 있었는지 나비가 정확하게 앉지 않는 문제점이 있기도 하였으나 이는 작품자체 문제라기보단 설치상의 문제이니..... (아무래도 하는 일이 이런 것이다 보니 그런 것만 눈에 띈다는.... 직업병인가?)
어쨌든 이와 유사하게 다른 작가에 의해 재해석되고 재생산된 작품들이 많이 나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mariposa라는 작품이 다른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일단 그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역시 나에게도 이 작품은 대중에게 매우 친숙하고 재미있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 작품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전시회 >Digital Playground - Uijeongbu International Digital Art Festival 2005
Date : October 21 - November 4, 2005
Venue : Uijeongbu Arts Center
Concept : "Let's play with media art works!!"
The exhibition "digital playground" present interactive media installations, web based works which are revolving around new kind of experience and digital creativity, new way of media art presentation.
Artists :
Pascal Glissmann & Martina Hofflin(Germany)
Zack Booth Simpson(USA)
Ryota Kuwakubo(Japan)
Kawakita Natsu, Nobuya Suzuki(Japan)
Hisako Kroiden Yamakawa (Japan)
Jean-Jacques Birge, Frederic Durieu, Thierry Laval, Kristine Malden(France)
Axel Roch(Germany)
Park So-Hyun(S.Korea)
Seo Hyo-Jung(S.Korea)
Byeong Sam Jeon(S. Korea)
Orna Portugali(Israel), Daphna Talithman(Israel) and Sharon Younger(Israel)
Bram Dauw, Alexandre Armand (Swiss)
입체주의는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에서 탄생했는데 그들은 자연을 재구성해 표현했던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느의 작품에 감명을 받은 후 입체주의 양식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을 원기둥이나 원뿔, 둥근 공 등의 형태로 나타낸 세잔느는 입체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세잔느는 중립적 주제라는 인상파의 제한된 영역을 유지하면서도, 예술을 위해 직접적 시각 경험을 배제하였다. 세잔느의 예술세계는 인상주의보다는 더 성실하게 시각적 지각 자체의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반영했다.
세잔느의 회화 작품에서는 오브제들의 여러 측면이 상이한 시점들에서 지각되었고, 이렇게 지각된 결과들이 축적되면서 단 하나의 복합적 형태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왜곡되고' 비-원근법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또, 구성의 방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세잔느는 인간 시계의 한계에 따른 별개의 영역 안에서 자신의 형태를 조직했다. 이들 영역 내부에서도 그는 형태의 대조를 달성할 목적에서 오브제들을 더욱 더 '왜곡'시켰으며, 그 결과 선들이 직각으로 서로 만나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도 했다. 그밖에도 그는 이 더 조그만 영역들 내부에서 오브제들을 재배치하고 그것들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2차원적 구조의 전체적인 통일을 도모했다.
이러한 복잡한 양식은 초기 입체주의의 주요한 근원 하나를 이루었다. 그러나 피카소와 브라크는 지각 과정의 조심스러운 기록과 그 과정의 미학적 정리를 전혀 상이한 목적을 위해 사용했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그 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제의 제한된 범위를 견지하면서 세잔느의 미술을 소화했다.
세잔느는 생 빅트와르 산을 즐겨 그렸다. 세잔느가 빅트와르 산에서 발견하고 또 실험하려고 했던 이미지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영속적이면서도 견고한 이미지, 그리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조합하려던 과학적인 사고이었을 것이다.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고찰과 인간의 시지각에 대한 분석에 의해, 그는 이후 전면에 부상하게 되는 입체파와 야수파를 이끄는 견인차가 되었다. 물론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닐지라도, 그의 작품관과 세계관이 반영된 작품 속에서 야수파는 세잔느의 색을 읽었고, 입체파는 세잔느의 형태를 읽었다.
입체주의는 피카소로 대변되는 화풍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이 피카소란 인물이 워낙 걸출한 관계로 입체파의 공식 타이틀은 개인의 그늘에 언제나 묻히는 결과가 되었다. 입체주의로 해석되어지는 큐비즘은 무엇이 재현되는 가의 문제와 무엇이 제시되는가의 문제, 즉 그림이 보여주려는 허구적인 리얼리티와 그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제적인 리얼리티를 함께 해결하려는 회화에서의 위기가 절정에 다다른 회화 양식으로 2차원적인 화폭에, 3차원의 대상을 심으려고 하는 특성을 지닌다. 화폭에다 사물을 재현하는 미술의 숙명상, 과거로부터 수많은 화가들이 평면에 3차원을 재현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고대 피라미드에서 발견되는 벽화의 인물이 보여지는 이차원적인 표현 기법.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 절정에 오른 원근법에도 소실점을 이용하거나 대기를 사용하는 등 방법과 기법이 다양했으며, 좀 더 완벽한 원근법을 발휘하는 화가가 우수한 화가가 되는 조건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회화가 사물의 재현이었던 대부분의 시기에는, 삼차원적인 대상을 어떻게 평면에 나타내느냐가 그들의 선결 과제였으며, 이러한 재현의 방법으로 그들이 맹신한 도구가 원근법이었다.
입체주의가 창조한 새로운 가치는 바로, 이러한 기존의 가치체계를 무너뜨리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원근법을 무시한 다중시점, 형태와 질감을 깨뜨린 혼란스러움이 처음 입체주의 작품들을 대한 사람들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입체주의는 사물을 바라보는 예술의 시선을 하나 더 더하여 주었다. 결국은 인간의 3차원적인 시각체계를 과학적으로 해석하여 평면에 표현한 것이기에, 인간의 잃었던 시야를 되찾아 준 건지도 모른다.
이처럼 입체주의가 등장 당시부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그들이 미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제시했던 시기가 다행히도 예술적 토양이 성숙했던 시기라는 행운도 그들에겐 있었다. 그러나 입체주의가 누린 진정한 영예는 그들이 세운 이정표를 따라 이후 20세기의 문화가 진보했다는 것이 아닐까?
입체주의가 쉬비터스와 뒤샹 같이 격조높은 화가들에게 그리고 그 후에도 수없이 많은 화가들에게 하나의 규범을 제공해 줄 수 있었고, 이들이 그 규범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빌려오거나 혹은 그것에 대해 반발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적 양식을 창조해 나갔다는 사실은 바로 입체주의의 위대성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입체주의의 방법에도 한 가지 결점이 있다. 입체주의 창시자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이러한 방법은 어느 정도 익숙한 형태에 한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 나타난 다양한 조각들을 서로 연관시킬 수 있으려면 그 사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입체파 화가들이 기타, 병, 과일 그릇, 때로는 인물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를 다루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피카소를 위시한 입체주의가 만개할 무렵, 입체주의와는 대별되는 행보를 하던 이들이 있었다. 이 후 추상주의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같은 이들이다. 추상주의는 대상을 재현해 내야하는 회화의 굴레와 같은 의무에 회의를 느낀 듯 하다. 이들은 앞으로의 미술이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심리를 자유로이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후 추상주의는 여러 갈래로 변화를 거듭해가며, 20세기 미술의 주류가 되었다. 결국 새로운 가치의 창조자란 관점에선, 입체주의나 추상표현주의가 같은 일을 한 것이지만, 이 둘의 역할분담은 구체적이었다. 즉, 입체주의는 시각구조와 관점에 따른 보이고 보여지는 현상의 문제를 다룬 반면, 추상표현주의는 보이지 않는 심리상태를 주로 다뤘다는 점일 것이다.
이후 발생하는 수많은 예술장르와 작가들은 이 둘의 영향하에서 자라나고 탄생한 지류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비올라는 뉴욕 퀸즈 태생으로 웨스트 베리 교외에서 자라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방송반 활동을 했고, 10대에 이미 가정용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시라큐스 대학에서 뉴 미디어와 인지 심리학, 음악을 공부한 비올라는 1972년 시라큐스 졸업 후 에버슨 미술관의 비디오 테크니션으로 취직한다. 당시 에버슨 미술관은 최초로 비디오 전문 큐레이터인 데이비드 로스를 고용하였고, 비디오 아트와 각종 뉴미디어 전시를 개최하였다. 당시는, 1966년 소니의 비디오 포타 팩이 출시된 이후 본격적인 비디오 아트가 탄생한지 10년이 채 되지 못한 시기였다. 비올라는 비디오 미술의 선구자인 백남준과 같은 유명한 비디오 작가들의 전시 설치를 도왔고, 그 이외에도 작곡가인 데이비드 투도어와 함께 일하며, 실험 음악과 관계된 음악과 음향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이해를 발전시켰다. 이처럼 비올라는 비디오 예술이 시작된 초기에 당시로서는 모든 젊은 작가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첨단 비디오 아트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후 해마다 새로운 작업이 선보이는 비디오 아트의 발전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었다.
“내가 1970년대 비디오 아트를 공부하던 시기에는 모든 매체의 실험이 보여졌던 시기였다. 즉, 이미지 조작, 백남준의 작업과 같은 실제 하드웨어에 대한 간섭과 조정,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과 비토 아콘치(Vito Acconci)의 퍼포먼스 아이디어, 레스 레빈(Les Levine)과 프랭크 질레트, 아이라 시더(Ira Snyder)와 같은 작가들의 영화적 몽타쥬 기법과 상영 등....”
비올라의 작업은 주로 원형적인 꿈의 패턴들, 시간의 우주적 사이클,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 태어남과 죽음의 삶의 과정, 무의식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영적인 교화(Spiritual enlightenment)에 대한 비올라의 탐색은 불교와 기독교, 수피와 선(Zen) 신비주의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탈리아, 바(Bah), 티벳, 일본 그리고 피지 섬 등으로의 여행에서 고무되었다.
특히 1980년 일본에서 지원하는 “일본/미국간 예술창작 지원금”으로 18개월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선불교승이자 화가였던 다이엔 타나카를 만나 교류하게 되고 자기 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작업이론을 구축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1981년에 소니 기술제휴 아츄기연구소로부터 그의 영상작업을 결정하는 “영상의 느림효과”를 획득하게 된다.
비올라의 비디오 작품들 속의 이미지들 즉, 밤 부엉이의 비행, 일본 어시장, 개복 수술장면 또는 어머니의 죽음의 이미지들에서 볼 수 있듯이 비올라는 복잡한 인식적 경험들을 표현하기 위해 보편적으로 이해 가능한 이미지들을 이용하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들과 기억들은 비올라의 작품에 이용되는 주 요소 중 하나이다. 비올라는 1988년 첫아기의 탄생을 경험하였고, 1991년 둘째의 탄생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극단적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1998년에는 어머니의 죽음과 같은 방식으로 아버지의 죽음(도판1) 겪게 된다. 비올라의 종교적이고 삶의 경험에 깊이 의존된 작업들은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 더욱 깊게 확산된다. 그 후 그는 잠, 죽음, 출생이라는 테마의 작업에 몰입하게 된다.
비올라의 1990년대 초반 작품인 <죽음 The Passing, 1991>(도판2), <하늘과 땅 Haven and Earth>(도판3), <낭트 삼면화 Nantes Triptych>(도판4) 등과 같은 작품 속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고통과 희열의 경험이 표현되어진다. 당시의 이러한 정신적인 희열과 고통의 극단적인 경험은 비올라의 작품 전체의 성격을 변화시킬 정도로 새롭고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이는 후에 제작되어지는 <격정> 시리즈 제작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비올라의 <격정 The Passions> 시리즈의 작품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미디어를 다루는 그의 기술과 자연스럽게 결합된 아름다운 시각 영상에 경이로움을 자아내게 한다. 성스러운 종교화를 대하듯 관객은 화면을 경건하게 응시하며 그 속에서의 시간의 흐름, 감정의 변화(도판5), 그리고 시각적으로 인식된 이미지의 견고함과 섬세함을 느끼게 된다.
비올라는 초기부터 기술적 진보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비디오 매체를 멀티 풀 스크린 프로젝션과 관객을 둘러싼 공간적 환경 창조 등으로 정의되도록 만드는데 공헌하였다. 그는 비디오 아트 설치의 몰입적 변환에 동참하여 관객들을 자신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유인한다. 비올라는 관객과 자신이 신체적으로, 기술적으로 함께 몰입해 가는 총체적 환경 속에서 자신의 비디오아트가 창작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듯한 소리들이 모든 방향에서 청각을 자극하고(도판6), 뿐만 아니라 가상의 현실 공간에 놓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 주는 설치 풍경(도판7), 그리고 특수 효과를 사용하여 현실 세계를 슬로우 모션(slow motion)으로 재현한 작품(도판8) 등은 마치 신화를 읽은 독자와 신화 속 주인공 사이에 생기는 모종의 관계를 암시하는 듯 하다. 이러한 비올라의 비디오 설치는 단순한 조형적 배치를 넘어서 연극적인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 관객들을 흡수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비올라는 가장 사실적인 매체인 카메라를 통해 극히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를 담아내고 있다. 그는 비디오(매체)를 통하여 인간 경험의 영적 측면과 지각적 측면을 탐구하고, 자아인식에 대한 통로로서 인식감각의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카메라는 ‘접촉’의 매체이다. 물체를 찍을 때, 외부에서 빛이 들어와 카메라의 표면에 접촉해서 이미지를 만든다. 그것은 세상과의 접촉이며,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은 한 쪽 눈으로 경험하는 혼자만의 세계이다. 카메라 때문에 존재하는 영상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시간성'에 있다. 실시간이든 편집된 시간이든 카메라를 따라 이미지가 움직이고 말한다. 비올라의 작품이 보여주는 카메라를 통해 접촉한 세상은 뿌옇게 반사된 수면처럼 현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단순한 서술구조를 넘어서 순서를 조작함으로써 특정한 시간을 새로운 공간으로 바꿔 놓는다.
고속 촬영을 통한 슬로 모션은 비올라가 즐겨 사용하는 기법으로 길게 늘어진 시간은 더 이상 현실 세계의 것이 아니다. 시간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현실 너머로의 진입을 권한다. 촬영속도의 조정, 반복적인 재생, 순간적인 복사, 기계적 조합 등 비디오 장치의 특성을 사용하여 영상 이미지를 정서적으로 풀어 감으로써 동양 사상과 고전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비올라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자기인식에의 탐구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다.
비올라의 < The Reflecting Pool, 1973 >은 고정카메라로 촬영한, 숲으로 둘러 쌓인 작은 수영장을 기본 장면으로 한 작품으로서, 이 작품에서 수면이나 인물, 배경 등은 따로 촬영되어 합성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시간은 역전하든지, 어긋나기도 하고, 압축 또는 동결되기도 한다. 이처럼 비올라는 비디오적인 기법만으로 새로운 시공간적인 표현을 성취하고자 의도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다양한 시간적인 조작을 행한 것은 장치의 기능을 최대한 이용해, 독자적인 표현의 기법을 모색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비올라는 원근법적인 시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일공간에 있어서 시간적인 조작을 통해 새로운 리얼리티를 표현한 것으로 숲속이나 물 속에서 환영처럼 출몰하는 인물을 이용한 시간의 몽타주는 ‘실제의 시간’을 ‘기억 속의 시간’으로 변용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올라의 음향, 빛, 공간에 대한 감수성과 서양 및 극동의 예술과 정신성에 대한 깊은 지식은 물론 그의 기술적인 노련함이 함께 흐르고 있는 영상들은 관객들을 시간성을 초월하는 영감과 다층적이고 명상적인 관조로 이끌고 있다. 그 때문에 비올라는 공존하기 힘든 대중적 인기와 미술계의 관심을 함께 받아왔다. 그것은 1960년대 이후 많은 현대미술에 의해 계승되었던 철학적이거나 언어학적인 주제에 의한 비올라의 생각들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비올라는 다른 동 세대 미술을 참고하기보다는, 태연하게도 이제는 잊혀진 “거대한 주제들”에 몰두했다.
“우리의 내적 삶들과 연결된 매우 많은 것들이 예술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특정한 그룹의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사랑 그리고 미움, 그리고 공포, 삶과 죽음 그리고 의식은 인류의 오래된 주제이다...그들은 단어의 현실적인 생각 속에서 풀 수 없는 그리고 신비로운 것이며 그래서 생기에 넘친다.”
비올라는 작가 개인이 겪었던 극단적인 경험들과 개인의 기억과 시간 속의 존재의 경험, 삶과 죽음의 윤회적 이미지를 작품을 통하여 드러내고 있으며 과거의 회화를 첨단기술로 재현한 이미지와 극도로 세밀하게 표현해낸 감정의 요소, 회화와 같이 벽에 걸리거나, 선반에 둘 수 있는 사이즈 등으로 전통적인 회화에 대한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둔다.
비올라의 작품이 갖고 있는 사적인 역사의 기억, 감정적 자극의 직접성, 새로운 비디오 회화의 개발, 대중의 환호, 상업적 매매의 성공 등은 그에 대한 평가를 극단적으로 좌우하는 요소들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그의 새로운 방법적 성공의 성패 여부를 가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그의 작품들은 세계 주요 미술관 전시와 컬렉션의 주요 품목이 되었으며, 대중들의 기호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현시점에서 그의 새로운 시리즈에 대한 미술사적 평가는 다소 성급하며, 좀더 많은 시간의 경과를 요구하고 있다.
(도판1)
Color video diptych on two LCD flat panels mounted on wall
38 x 108 x 6 cm
1998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경험으로 2002년 제작된 5점의 <매일 나아가는 Going Forth By Day>(각 35분 분량) 중
(도판2)
<죽음 The Passing, 1991>
싱글 채널 비디오
(도판3)
<하늘과 땅 The Haven and Earth,1992>
비디오 설치, 2.9x4.9x2.2(설치공간)
(도판4)
<낭트 삼면화 Nantes Triptych, 1992>
비디오, 사운드 설치, 중앙(3.2x4.2m), 좌우패널(3.2x2.7m)
(도판5)
Color video on LCD flat panel mounted on wall. 49 x 38 x 6 cm
(도판6)
Color video on plasma display
mounted vertically on wall
120.7 × 72.4 × 10.2 cm
(도판7)
The veiling was created for the exhibition "Buried Secrets," US Pavilion, 46th Venice Biennale
350 x 670 x 940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