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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12/09 입체주의 (큐비즘, cubism) by hans

입체주의 (큐비즘, cubism)

입체주의는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에서 탄생했는데 그들은 자연을 재구성해 표현했던 후기 인상주의 화가 폴 세잔느의 작품에 감명을 받은 후 입체주의 양식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을 원기둥이나 원뿔, 둥근 공 등의 형태로 나타낸 세잔느는 입체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세잔느는 중립적 주제라는 인상파의 제한된 영역을 유지하면서도, 예술을 위해 직접적 시각 경험을 배제하였다. 세잔느의 예술세계는 인상주의보다는 더 성실하게 시각적 지각 자체의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반영했다.

세잔느의 회화 작품에서는 오브제들의 여러 측면이 상이한 시점들에서 지각되었고, 이렇게 지각된 결과들이 축적되면서 단 하나의 복합적 형태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왜곡되고' 비-원근법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또, 구성의 방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세잔느는 인간 시계의 한계에 따른 별개의 영역 안에서 자신의 형태를 조직했다. 이들 영역 내부에서도 그는 형태의 대조를 달성할 목적에서 오브제들을 더욱 더 '왜곡'시켰으며, 그 결과 선들이 직각으로 서로 만나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도 했다. 그밖에도 그는 이 더 조그만 영역들 내부에서 오브제들을 재배치하고 그것들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2차원적 구조의 전체적인 통일을 도모했다.

이러한 복잡한 양식은 초기 입체주의의 주요한 근원 하나를 이루었다. 그러나 피카소와 브라크는 지각 과정의 조심스러운 기록과 그 과정의 미학적 정리를 전혀 상이한 목적을 위해 사용했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그 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제의 제한된 범위를 견지하면서 세잔느의 미술을 소화했다.

세잔느는 생 빅트와르 산을 즐겨 그렸다. 세잔느가 빅트와르 산에서 발견하고 또 실험하려고 했던 이미지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영속적이면서도 견고한 이미지, 그리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조합하려던 과학적인 사고이었을 것이다.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고찰과 인간의 시지각에 대한 분석에 의해, 그는 이후 전면에 부상하게 되는 입체파와 야수파를 이끄는 견인차가 되었다. 물론 그가 의도한 바는 아닐지라도, 그의 작품관과 세계관이 반영된 작품 속에서 야수파는 세잔느의 색을 읽었고, 입체파는 세잔느의 형태를 읽었다.

입체주의는 피카소로 대변되는 화풍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이 피카소란 인물이 워낙 걸출한 관계로 입체파의 공식 타이틀은 개인의 그늘에 언제나 묻히는 결과가 되었다. 입체주의로 해석되어지는 큐비즘은 무엇이 재현되는 가의 문제와 무엇이 제시되는가의 문제, 즉 그림이 보여주려는 허구적인 리얼리티와 그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제적인 리얼리티를 함께 해결하려는 회화에서의 위기가 절정에 다다른 회화 양식으로 2차원적인 화폭에, 3차원의 대상을 심으려고 하는 특성을 지닌다. 화폭에다 사물을 재현하는 미술의 숙명상, 과거로부터 수많은 화가들이 평면에 3차원을 재현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고대 피라미드에서 발견되는 벽화의 인물이 보여지는 이차원적인 표현 기법.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에 절정에 오른 원근법에도 소실점을 이용하거나 대기를 사용하는 등 방법과 기법이 다양했으며, 좀 더 완벽한 원근법을 발휘하는 화가가 우수한 화가가 되는 조건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회화가 사물의 재현이었던 대부분의 시기에는, 삼차원적인 대상을 어떻게 평면에 나타내느냐가 그들의 선결 과제였으며, 이러한 재현의 방법으로 그들이 맹신한 도구가 원근법이었다.

입체주의가 창조한 새로운 가치는 바로, 이러한 기존의 가치체계를 무너뜨리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원근법을 무시한 다중시점, 형태와 질감을 깨뜨린 혼란스러움이 처음 입체주의 작품들을 대한 사람들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입체주의는 사물을 바라보는 예술의 시선을 하나 더 더하여 주었다. 결국은 인간의 3차원적인 시각체계를 과학적으로 해석하여 평면에 표현한 것이기에, 인간의 잃었던 시야를 되찾아 준 건지도 모른다.

이처럼 입체주의가 등장 당시부터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그들이 미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제시했던 시기가 다행히도 예술적 토양이 성숙했던 시기라는 행운도 그들에겐 있었다. 그러나 입체주의가 누린 진정한 영예는 그들이 세운 이정표를 따라 이후 20세기의 문화가 진보했다는 것이 아닐까?

입체주의가 쉬비터스와 뒤샹 같이 격조높은 화가들에게 그리고 그 후에도 수없이 많은 화가들에게 하나의 규범을 제공해 줄 수 있었고, 이들이 그 규범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빌려오거나 혹은 그것에 대해 반발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적 양식을 창조해 나갔다는 사실은 바로 입체주의의 위대성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입체주의의 방법에도 한 가지 결점이 있다. 입체주의 창시자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이러한 방법은 어느 정도 익숙한 형태에 한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 나타난 다양한 조각들을 서로 연관시킬 수 있으려면 그 사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입체파 화가들이 기타, 병, 과일 그릇, 때로는 인물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를 다루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피카소를 위시한 입체주의가 만개할 무렵, 입체주의와는 대별되는 행보를 하던 이들이 있었다. 이 후 추상주의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같은 이들이다. 추상주의는 대상을 재현해 내야하는 회화의 굴레와 같은 의무에 회의를 느낀 듯 하다. 이들은 앞으로의 미술이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심리를 자유로이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후 추상주의는 여러 갈래로 변화를 거듭해가며, 20세기 미술의 주류가 되었다. 결국 새로운 가치의 창조자란 관점에선, 입체주의나 추상표현주의가 같은 일을 한 것이지만, 이 둘의 역할분담은 구체적이었다. 즉, 입체주의는 시각구조와 관점에 따른 보이고 보여지는 현상의 문제를 다룬 반면, 추상표현주의는 보이지 않는 심리상태를 주로 다뤘다는 점일 것이다.
이후 발생하는 수많은 예술장르와 작가들은 이 둘의 영향하에서 자라나고 탄생한 지류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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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ns

2005/12/09 21:47 2005/12/0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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